이덕무 청언소품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정민 엮음
책을 펴내며
몸은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마음은 ‘그때 거기’로 향할 때가 많다. 지금 이곳의 삶은 내게 늘 허전하고 허기를 준다. 옛글과 만날 때 나는 오히려 내면의 충만을 느낀다. 생기를 얻는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문인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언소품(淸言小品)을 모아 엮은 것이다. 그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전부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일부를 우리말로 옮기고 평설을 보탰다. 이들 글을 읽다가 혼자만 음미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읽어 이렇게 좋으니 다른 사람과도 이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 옳겠다고 여겼다. 그냥 원문의 번역만으로는 전달에 무리가 있겠기에 군말을 덧붙이고 각 편마다 제목을 달았다.
글을 읽다 보면 얼음이 꽁꽁 어는 추운 방에서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한자 한자 또박또박 글씨를 써나가던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온몸으로 그 시대를 고민했던 이, 폐병과 영양실조로 어머니와 누이를 먼저 보내는 처절한 궁핍 속에서도 제 가는 길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던 사람. 세상에 그만큼 생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 있을까?
그가 남긴 글은 아름답고 슬프다.
문화의 단절은 골이 점점 깊어지고, 옛글은 자꾸 고리타분하게만 보인다. 한자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대학생들에게 나는 한문학을 강의한다. 막막하다.
그렇지만 한자의 숲을 걸어나와 우리말로 옮겨 읽으면 전혀 다른 말씀의 세계가 열린다. 여기에는 인터넷과 같은 정보의 바다 속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육성의 말씀, 살아있는 언어, 지혜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래서 힘이 있다. 읽는 이도 힘이 난다.
단절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끊어진 양 언덕에 다리를 놓아 소통의 숨통을 터주는 것은 이 시대 학자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몫이다. 대부분의 작업은 지하철을 오가며 했다. 그밖에 내게 주어진 자투리 시간들을 이런 말씀과 더불어 채울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가운데는 지난 1년간 대만 정치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지내며 늘 혼자 소요하던 목책관광차원의 그 푸르른 차밭과 이따금 코 끝에 끼쳐오던 이초(異草)의 훈향도 스며 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2000년 새봄날 행당동산에서
정민
*
서설
지리산의 물고기, 이덕무 이야기
세상사는 일이 하도 심드렁하다 보니, 옛사람의 맑은 정신이 뜬금없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삶의 속도는 나날이 빨라져, 어떤 새것도 나오는 순간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도 내면에는 마치 허기가 든 것처럼 충족되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정말 마음에 맞는 벗이 하나 있어, 멀리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훈훈해지는 그런 만남이 문득 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
이덕무! 그를 생각하면 나는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후리후리한 큰 키에 비쩍 마른 몸매, 퀭하니 뚫린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 추운 겨울 찬 구들에서 홑이불만 덮고 잠을 자다가 《논어》를 병풍 삼고, 《한서》(漢書)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덮고서야 겨우 얼어죽기를 면했던 사람.
목멱산 아래 멍청한 사람이 있는데, 어눌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고 성품은 게으르고 졸렬한 데다, 시무(時務)도 알지 못하고 바둑이나 장기는 더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이를 욕해도 따지지 않았고, 이를 기려도 뽐내지 않으며, 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 못하였다.
어릴 때부터 21세 나도록 손에서 일찍이 하루도 옛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 방은 몹시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에 따라 빛을 받아 글을 읽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보게 되면 문득 기뻐하며 웃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을 보고 기이한 책을 얻은 줄을 알았다.
두보의 오언율시를 더욱 좋아하여, 끙끙 앓는 것처럼 골똘하여 읊조렸다. 그러다 심오한 뜻을 얻으면 너무 기뻐서 일어나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데, 그 소리는 마치 갈가마귀가 깍깍대는 것 같았다. 혹 고요히 소리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하고, 꿈결에서처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해도 또한 기쁘게 이를 받아들였다. 아무도 그의 전기를 짓는 이가 없으므로 이에 붓을 떨쳐 그 일을 써서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지었다. 그 이름과 성은 적지 않는다.
이 〈간서치전〉은 이덕무가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에 대해 적은 실록이다. 아무도 그의 전기를 짓지 않기에 자기가 자기 일을 적는다고 했다. 일면의 자조와 일면의 득의가 교차하고 있는 글이다. 그는 풍열로 눈병에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중에도 어렵사리 실눈을 뜨고서 책을 읽었던 책벌레였다. 열 손가락이 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 끝이 밤톨만하게 부어올라 피가 터질 지경 속에서도 책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써 보낸 그였다. 그는 마치 기갈이 들린 사람처럼 책을 읽었다. 가난하여 책 살 돈이 없었기에 늘 남에게서 빌려 보았다. 한 권 책을 얻으면 기뻐 이를 읽고, 또 중요한 부분을 베껴 적었다. 이렇게 읽은 책이 수만 권이었고, 파리 대가리만한 작은 글씨로 베낀 책만 수백 권이었다.
그는 왜 이토록 책 읽기에 집착했을까? 그는 서얼이었다. 품은 바 포부와는 관계 없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 해서 딱히 써먹을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자신의 힘이나 능력 밖의 일이거나, 법을 범하고서야 가능한 부정한 것이었기에 그 처절한 가난과 숙명의 굴레를 천명으로 알고 살았다. 견딜 수 없는 고비도 많았다.
내 집에 좋은 물건이라곤 단지 《맹자》 일곱 편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딜 길 없어 2백 전에 팔아 밥을 지어 배불리 먹었소. 희희낙락하며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에게 달려가 크게 뽐내었구려. 영재의 굶주림도 또한 하마 오래였던지라, 내 말을 듣더니 그 자리에서 《좌씨전》을 팔아서는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나를 마시게 하지 뭐요. 이 어찌 맹자가 몸소 밥을 지어 나를 먹여주고, 좌씨가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 것과 무에 다르겠소. 이에 맹자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하였더라오. 그렇지만 우리들이 만약 해를 마치도록 이 두 책을 읽기만 했더라면 어찌 일찍이 조금의 굶주림인들 구할 수 있었겠소. 그래서 나는 겨우 알았소. 책 읽어 부귀를 구한다는 것은 모두 요행의 꾀일 뿐이니, 곧장 팔아치워 한번 거나히 취하고 배불리 먹기를 도모하는 것이 박실(樸實)함이 될 뿐 거짓 꾸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오. 아아!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이서구(李書九, 1754~1825)에게 보낸 편지다. 주림을 견디다 못해 손때에 절은 《맹자》를 잡혀 오랜만에 온 식구들이 굶주린 배를 채웠다. “여보게! 이 사람. 오늘은 맹자가 내게 밥을 지어주네 그려.” 그 길로 친구 집에 달려가 툭 던지는 말이다. 이미 양식 떨어진 지가 여러 날째이던 유득공도 제 아끼던 《좌씨전》을 내다 팔아 쌀 사고 남은 돈으로 막걸리를 받아와 친구에게 따라주는 것이다. 무엇이 그리 좋아 희희낙락했던가? 무슨 자랑할 일이라고 친구 집으로 달려갔던가? 또 그 와중에 제 주머니 사정 아랑곳 않고 술을 받아와 벗에게 따라주던 유득공의 그 심사도 도무지 나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그렇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책 읽어 부귀를 꿈꾼다는 것은 애초에 허망한 일이 아니었더냐. 차라리 다 팔아치워 밥술이나 배불리 먹는 것이 더 낫지 않으랴! 때로 이런 자조의 심정인들 왜 없었으랴! 그러나 나는 알 수가 있다. 제 손때 묻은 《맹자》가 혹 남의 손에 넘어가지나 않을까 싶어 하루가 멀다하고 헌책방을 기웃거렸을 그의 모습을 말이다.
그의 어머니는 영양실조 끝에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의원의 처방을 받고도 돈을 마련하지 못해 그 약을 지어드리지 못했다. 어쩌다 어렵게 약을 마련하면 손수 약을 달이며 약탕관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졸아드는 약물소리를 제 애간장이 녹는 소리로 들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세상을 뜬 후 그는 무연히 앉아, “지금도 슬픈 생각이 들어 가만히 귀를 귀울이면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은은하게 아직도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황홀하게 사방을 둘러보아도 기침하시는 어머니의 그림자는 찾을 수가 없다. 이에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라고 쓰고 있다.
고생 끝에 하필 가난한 집에 시집간 누이가 역시 영양실조로 폐병이 깊어 집에 데려와 구완하다가 또 그렇게 세상을 버렸을 때, 그는 피눈물로 누이의 제문을 이렇게 썼다.
6월 3일, 폭우가 쏟아지며 캄캄해졌다. 전날 저녁부터 아침까지 온 식구가 모두 밥을 굶었다. 네가 이를 알고는 기쁘지 않아 상을 찡그리더니, 이 때문에 병이 더 극심해졌다. 아이를 집에 돌려 보내자 갑자기 네가 숨을 거두었다. 늙은 어버이는 흐느껴 울며 부자와 형제가 이에 세 번 곡하였다. 천하에 지극히 애통한 소리다. 너는 이제 영원히 잠들었으니 이를 듣는가 듣지 못하는가?
평시에는 남들과 말할 적에 형제가 몇이냐고 물으면 아무개와 아무개 넷이 동기라고 하였더니, 이제부터는 남들이 물으면 넷이라 할 수가 없겠구나. 몸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육골을 긁어내는 것만 같구나. 형은 아우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우가 형을 묻는 것을 애통해하는도다. 이치가 분명하여 차례가 있어 어길 수 없건만, 네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보게 되니 나는 원통하고 참담할 뿐이로구나. 너는 비록 편하겠으나 내 죽으면 누가 울어주랴! 어두운 흙구덩이에 차마 어찌 옥 같은 너를 묻으랴? 아, 슬프도다.
눈물없이는 차마 읽을 수 없는 제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그의 무기력하기만 한 독서가 슬며시 미워진다. 누구를 위한 독서요, 무엇을 위한 독서였던가? 제 어미의 약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제 누이마저 영양실조로 떠나 보내는 그런 독서를 무엇에다 쓴단 말이냐?
정작 그가 벼슬길에 오른 것은 39세 때였다. 정조가 학술 진흥을 내세워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세운 규장각에 초대 검서관(檢書官)으로 임명된 것이다. 여기에는 그의 식견과 사람됨을 아끼던 벗들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 검서관의 일이란 규장각의 문서 정리나 자료 조사와 같은 단순 작업이었다. 책을 교정하는 작업도 했다. 하루 5천 자도 넘는 글을 쓰느라 손이 마비될 지경에 이를 만큼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는 유난히도 호(號)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젊었을 적에는 ‘영처’(嬰處)란 호를 썼다. 어린아이와도 같은 거짓없는 마음을 썼으되 처녀의 수줍음은 지녀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워서라고 했지만, 그처럼 천진하고 진실된 마음이 담긴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또 매미와 귤의 맑고 깨끗함을 사랑하여‘선귤당’(蟬橘堂)이란 당호를 썼다. 강호에 살면서 아무 영위함이 없이 그저 제 앞을 지나가는 고기만 먹고 사는 신천옹이라고도 불리는 청장(靑莊)의 삶을 부러워하여 제 집의 이름을 ‘청장관’(靑莊館)이라고 짓기도 했다. 많은 호 못지 않게 그가 남긴 방대한 저술은 더더욱 사람을 압도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적었다 하여 지은 《이목구심서》는 당시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 등이 여러 번 빌려가 자기 글에 수도 없이 인용한 책이다. 그의 해박한 독서와 지적 편력, 사물에 대한 투철한 관심이 한눈에 들여다 보인다. 한마디로 경이로움으로 읽는 이를 압도하는 글이다. 또 선비의 몸가짐을 격어투로 적은 《사소절》(士小節), 고금 명인들의 시화(詩話)를 수록한 《청비록》(淸脾錄), 역사서인 《기년아람》(紀年兒覽), 일본 풍토지라 할 《청령국지》(蜻蛉國志) 등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규장각에 있으면서는 《국조보감》(國朝寶鑑), 《갱장록》(羹墻錄), 《문원보불》(文苑黼黻), 《대전통편》(大典通編)의 편찬에 참여하여 한몫을 담당했다. 이 밖에 《어정송사전》(御定宋史筌)과 《여지지》(輿地志),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등의 관찬서도 모두 그의 꼼꼼한 필치가 배어 있는 책들이다.
정조는 그의 책 읽는 소리를 아껴, 임금 앞이라 자꾸 소리를 낮추는 그에게 자주 음성을 높일 것을 주문하였고, 책 교정말고 스스로의 저작을 남길 것을 권면하여 그를 감격시켰다. 39세 이후 15년 관직에 있는 동안 정조는 그에게 모두 520여 차례에 걸쳐 하사품을 내렸다. 그가 세상을 뜨자 정조는 국가의 돈으로 그의 문집을 간행케 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도 아버지의 벼슬을 그대로 내렸다. 그러고 보면 그의 독서가 그렇게 무기력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늘에 그가 나를 압도하는 대목은 결코 그의 호한한 독서와 방대한 저작이 아니다. 그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맑은 삶을 살려 애썼던 그의 올곧은 자세가 나는 무섭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만년의 별 실속 없는 득의거나, 그 많은 임금의 하사품이 아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고, 알아줄 기약도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제 가는 길을 의심치 않았던 그 믿음, 그 처참한 가난과 신분의 질곡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옛사람의 그 맹목적인 자기 확신이 나는 부럽다. 독서가 지적 편식이나 편집적 욕망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읽는 경륜으로 이어지던 그 지적 토대를 나는 선망한다. 추호의 의심 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 그 선인들의 내면 풍경이 나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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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귤당농소
蟬橘堂濃笑
회심의 순간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마음에 맞는 말을 하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으면 이것이야말로 지극한 즐거움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찌 이다지도 그런 기회가 오기 드물단 말인가? 일생에 무릇 몇 번일 것이다.
値會心時節, 逢會心友生, 作會心言語, 讀會心詩文 此至樂而何其至稀也. 一生凡幾許番.
회심(會心)의 순간은 기약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려 한다 해서 되지 않고, 만들려 한 대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순간은 아무도 기약하지 않은 그때에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긴 날을 그때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힘을 충전시켜준다. 또 언젠가 올 회심의 그때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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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과 여의주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룡(驪龍)의 여의주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여룡 또한 여의주를 가지고 스스로 뽐내고 교만하여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螗琅自愛滚丸, 不羡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말똥구리에게 여의주는 아무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여룡에게 말똥은 전혀 쓸데가 없다. 모든 일에는 꼭 필요한 곳이 있다. 말똥구리에게는 말똥이 여의주보다 소중하고, 여룡에게는 여의주가 말똥보다 소중하다. 말똥과 여의주는 각자에게 그 의미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똥은 더럽다 하고 여의주만 귀하다 한다. 제게 가치로운 것만 최고로 여기고, 그밖의 것에는 눈도 주지 않는다. 까마귀 더럽다고 침 뱉고 해오라기는 희니 고결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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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신선이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담백하여 때에 얽매임이 없으면 도가 이미 원숙해지고, 금단(金丹)이 거의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저 허공을 날아오르고 껍질을 벗고 변화한다는 것은 억지로 하는 말일 뿐이다. 만약 내가 잠깐이라도 얽매임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그 잠깐 동안 신선인 것이요, 반나절 동안 그러하다면 반나절 동안 신선이 된 것이다. 내 비록 오래도록 신선이 되어 있지는 못해도 하루 가운데 거의 서너 번씩은 신선이 되곤 한다. 대저 발 아래에서 뽀얀 붉은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자는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신선이 되지 못하리라.
神仙非別人. 澹然無累時, 道果已圓, 金丹垂成. 彼飛昇蛻化, 勉強語耳. 如我一刻無累,是一刻神仙, 半日如許, 爲神仙半日矣. 我則雖不能耐久爲神仙, 一日之中, 幾三四番爲之. 夫腳下軟紅塵勃勃起者, 一生不得爲一番神仙.
신선이 별건가?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보허등공(步虛登空)해야만 신선이 아니다. 신선이란 마음에 누추함이 없고, 희디 흰 종이처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 마음에 티끌 세상 일을 들여놓지 않고, 거기에다 내 정신을 소모하지 않고, 내가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을 신선이라 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신선이 되곤 한다. 나는 신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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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
옛날과 지금은 큰 순식간이고, 아주 짧은 시간도 옛날과 지금이랄 수 있겠다. 순식간이 쌓여 어느새 고금이 된다. 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쳇바퀴 돌 듯 억만 번 교체되어도 늘상 새롭다. 이 가운데 나서 이 속에서 늙으니 군자는 어제, 오늘, 내일의 3일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一古一今, 大瞬大息, 一瞬一息, 小古小今. 瞬息之積, 居然爲古今. 又昨日今日明日, 輪遞萬億, 新新不已. 生於此中, 老於此中, 故君子着念此三日.
아득한 옛날도 생각하기에 따라 순식간일 뿐이고, 잠깐의 시간도 마음먹기에 따라 아득한 옛날로 될 수 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그 순식간이 쌓여 세월의 켜가 앉는다. 어제의 홍안은 어느새 백발이 되고, 오늘의 백발이 내일은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오늘을 소흘히 할 수 있으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묘결이 바로 이 ‘사흘’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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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구심서
耳目口心書
경계로 삼을 일
어떤 사람이 나를 경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한 가지 기예를 지니게 되면 눈 아래 뵈는 사람이 없게 되고,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자신하면 점점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겨나서 작게는 욕설이 몸에 모여들고, 크게는 재앙과 환란이 뒤따르게 되네. 이제 그대가 날마다 문자의 사이에다 마음을 두고 있으니 남을 업신여길 거리를 만들려 힘쓰는 겐가?”
내가 손을 모으며 말했다.
“감히 경계로 삼지 않겠는가?”
人有戒余曰. “終古挾一小枝, 始眼下虛無人, 自信一偏之見, 渤有凌人之心. 小則罵詈叢身, 大則禍患隨之. 今子日留心文子之間, 務爲凌人之資耶?” 余斂手曰. “敢不戒.”
알량한 재주를 맏고 함부로 날뛰지 마라. 얄팍한 지식을 과신하지 마라. 어정쩡한 식견은 남을 다치게 하고 나를 다치게 한다. 학문하는 일이 교만을 가져온다면 차라리 몰라서 겸손한 것이 낫다. 아! 나의 공부는 과연 어떠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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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지난 경진년과 신사년 겨울의 일이다. 내가 거처하던 작은 띳집이 몹시 추웠다. 입김을 불면 성에가 되곤 해, 이불깃에서 버석버석하는 소리가 났다. 내 게으른 성품으로도 한밤중에 일어나 창졸간에 《한서》 한 질을 가지고 이불 위에 죽 늘어놓아, 조금이나마 추위의 위세를 누그려뜨렸다. 이것이 아니었더라면 거의 얼어죽은 진사도(陳師道)의 귀신이 될 뻔하였다.
간밤에도 집 서북편 모서리로 매서운 바람이 쏘듯이 들어와 등불이 몹시 다급하게 흔들렸다. 한동안 생각하다가 《논어》 한 권을 뽑아 세워 바람을 막고는 혼자서 그 경제(經濟)의 수단을 뽐내었다. 옛사람이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든 것은 기이함을 좋아함이라 하겠거니와, 또 금은으로 새와 짐승의 상서로운 상징을 새겨 병풍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워 족히 부러워할 것이 못 된다.
어찌 내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이 창졸간에 한 것임에도 반드시 경사(經史)를 가지고 한 것만 같겠는가? 또한 한나라 왕장(王章)이 쇠덕석을 덮고 누웠던 것이나, 두보가 말 안장을 깔고 잔 것보다야 낫다 할 것이다. 을유년 겨울 11월 28일에 적다.
往在庚辰辛巳冬, 余小茅茨太冷, 噓氣蟠成氷花, 衾領簌簌有聲. 以余懶性。夜半起, 倉卒以漢書一帙, 鱗次加於衾上, 少抵寒威. 非此幾爲后山之鬼. 昨夜屋西北隅, 毒風射入, 掀燈甚急. 思移時, 抽魯論一卷立障之, 自詑其經濟手段. 古人以蘆花爲衾是好奇, 又有以金銀鏤禽獸瑞應爲屛者汰侈, 不足慕也. 何如我漢書衾魯論屛, 造次必於經史者乎? 亦勝於王章之卧牛衣, 杜甫之設馬韉也. 乙酉冬十一月二十有八日記.
초가집이 통째로 얼어붙는 엄동설한에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으로 겨우 얼어죽기를 면하고는, 곧 죽어도 다른 책이 아니라 경사를 가지고 목숨을 부지하였노라고 호기를 부렸다. 송나라 때 진사도(宋 詩人)는 추운 날 솜옷이 없어 여름옷을 입고 교사(郊祀)에 참여 하였다가 한질(寒疾)에 걸려 죽었다. 한나라 때 왕장(前漢 末期 官僚)은 장안에서 공부할 적에 병을 앓아 누웠으나 이불조차 없었기에 쇠덕석을 덮고서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엉엉 울었다. 두보(唐 詩人)도 길을 가다가 한둔하게 되었을 때, 덮을 것이 없어 말 안장을 덮고 잠을 청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들보다는 낫구나. 이제 이 글을 읽으니 그 말 끝에 묻어나는 슬픔을 읽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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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가장 으뜸가는 것은 가난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 그 다음은 가난을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가난을 꺼리고, 가난을 호소하며, 가난에 짓눌리다가 가난에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아래는 가난을 원수로 여기다가 가난에 죽는 것이다.
太上安貧, 其次忘貧, 最下諱貧訴貧, 壓於貧. 又最下, 仇讐於貧, 仍死於貧.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단지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그 불편이란 것도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징표가 아닌가? 가난을 동무삼아 편안히 같이 지낼 수 있으려면 얼마만큼의 인내가 필요할까? 내가 가난한지조차 잊는 망각의 경지도 아득하게만 여겨지니 말이다. 가장 슬픈 것은 가난에 찌들어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살다 가는 인생들이다. 그들은 가난을 수치로만 알아, 잔뜩 주눅이 들어 결국 가난 앞에 자신의 인생을 침몰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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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정신은 쉬 소모되고 세월은 빨리도 지나가 버린다. 하늘과 땅 사에에 가장 애석한 일은 오직 이 두 가지뿐이리라.
情神勿耗, 歲月勿邁. 天地間最可惜, 惟此二者而已.
닦아놓은 유리알 같던 정신은 쉬 소모되어 흐리멍텅해지고, 그 사이에도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다. 그 빛나던 청춘의 섬광은 어디에 있는가? 흘러간 시간은 어디에 퇴적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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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남이 나를 하인이나 시정배 꾸짖듯이 한다면 성을 내고, 맑은 사람이나 현명한 선비로 대접해주면 기뻐한다. 이는 인정의 본디 그러함이다. 그러나 그 스스로 처신하는 바를 살펴보면 노예처럼 굴기도 하고 시정배처럼 굴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스스로 돌아봄을 귀히 여기고, 이름과 실제가 서로 부합되지 않음을 미워하는 것이다.
人若責之以奴隷市井則怨, 待之以淑人哲士則喜, 人情固也. 然顧其所自處, 則奴隸吾也, 市井吾也. 是故君子責自返, 而惡名實之不相副也.
남이 나를 어찌 대접하는가에 따라 내 마음속에서 희비가 엇갈린다. 그러나 남이 나를 좋게 대접해주기는 기대하면서 제 몸가짐은 천한 아랫것들이나 시정잡배들처럼 지니니 슬픈 일이다. 자기 대접은 자기가 받는다. 내가 하는 처신은 곧 내가 받는 대접의 무게와 같다. 명실이 상부해야 하리라. 스스로를 맹렬히 돌아보아야 하리라. 부끄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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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
나이 어린 자제가 누워 자기나 좋아하고, 어른이 가르쳐 경계하는 말을 듣기 싫어하며, 그저 절제 없이 놀려고만 하여 그 바탕을 느슨하게 만들어 용렬하고 비루하게 되는 데 그친다면 남에게 해 될 바야 없겠지만, 만약 그 경박한 재능이 말재주가 빼어나 교묘히 꾸며 덮어 가리기에만 힘쓴다면 장차 하지 못할 짓이 무엇이겠는가? 때문에 어린이의 교육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子弟年少好臥睡, 厭避長老之規警, 只欲優遊無節, 使其質緩, 則歸於庸鄙而止. 無所害於人, 若其輕俊長於口辯, 巧飾掩遮爲, 將何所不至乎? 是故貴蒙養.
틈만 있으면 누워 자기만 좋아하고, 어른의 가르침을 듣기 싫어한다면 마침내 고칠 수 없는 기질이 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는 남이 비웃음을 당하고 작은 성취조차 이루지 못하는 범용한 인간이 되는 데 그친다. 이뿐이라면 세상에 나온 보람이 너무 무색하지 않은가? 이것은 그래도 괜찮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는 않으니 말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의 말솜씨와 그럴듯한 겉꾸밈으로 무리를 현혹하고 속이다가 가증스런 본바탕이 탄로나서 마침내 제 몸을 망치고 제 집안을 망치는 자가 있다. 이는 모두 어릴 적 가정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자녀 교육을 어이 소홀히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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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비결
말이 번다하고 경솔한 것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중함’과 ‘간결함,’ 이 두 가지가 바로 말하는 일의 중요한 비결이 된다.
言語繁率, 心無底定也. 愼簡二字, 爲口業要訣.
가볍게 떠드는 말, 경솔한 언행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잠시도 침묵중에 스스로를 맡겨두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이 들떠 있기 때문이다. 들뜬 기운은 자꾸 위로 올라와 입을 움직이게 만든다. 말은 신중하게, 또 간결하게 할 일이다. 말을 아낄수록 그 말에는 장중한 무게가 실린다. 떠들지 마라. 침묵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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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부질없는 이야기로 둘러앉아 떠들면 참된 총명은 점차 사라져 버린다.
假談圍繞, 眞聰消泐.
여럿이 모여 앉아 떠드는 쓸데없는 이야기는 단지 정신을 소모 시킬 뿐이다. 하루중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우리는 이런 잡담으로 낭비하는가? 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를 들어라. 들을 줄 아는 귀, 볼 줄 아는 눈은 그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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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은 9분까지 이르러 항상 마지막 1분에서 어그러지고 만다.
好事到九分. 常虧一分地.
호사다마라고 했다. 다 잘되었다 싶다가도 뜻하지 않은 일에 발목을 붙들리고 만다.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순조로울수록 더 조심하라. 애를 써놓고 마지막에 가서 그간의 보람을 제 손으로 허무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 1분에 일의 성패가 판가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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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몸둘 바 모를 곳에 남을 처하게 하지 말라.
勿置人於無所容身之地.
쥐도 막판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설사 그가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사람을 너무 궁지에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처음 그는 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다가 다음 순간 그것을 원망으로 바뀌게 된다. 그도 스스로를 돌이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그치기만 하면 앙심을 품어 도리어 해코지를 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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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됨의 바탕
성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뉘우침을 근심하는 것이 사람됨의 바탕이다.
恥憤愓悔, 爲人之基.
화내지 않고 살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혹 화를 내지 않아도 될 장면에서 화를 낸 것은 아니었나를 돌아보고, 세상 사는 일에 후회가 없을 수야 없겠으나 혹 지금의 내 행동에도 그러한 점은 없을까 근심한다면 마땅히 허물이 적으리라. 까닭없이 화를 내고, 행하고는 후회하는 삶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 두 가지를 마음에 새겨야 하리라. 자꾸 화를 내면 그 밑에 사람이 모이지 않고, 후회할 일을 되풀이하면 나중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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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정민 엮음.
2000년 3월 15일 1판 1쇄 발행본. 펴낸 곳 도서출판 열림원.
한국고전종합DB 이덕무 청장관전서 바로가기.
제 48권~53권(이목구심서1~6)까지, 제 63권 (선귤당농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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