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시아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by hawoo(하우/下愚) 2026. 6. 2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유홍준

 

책을 펴내면서

 

국토박물관의 길눈이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1987,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뮤지움의 한 관계자가 내게 한국의 박물관 실태를 물어왔을 때 내 대답의 요지는 그것이었다. 서구의 미술관들은 경쟁적으로 그 규모의 방대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로 한결같이 이국문화의 수용소일 뿐, 낱낱 유물의 생명력은 벌써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명작들의 공동묘지라는 혹독한 자기비판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좁은 땅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같은 지역에서, 같은 혈통끼리, 같은 언어로, 같은 제도와 풍습을 지니면서, 같은 운명 공동체로서 그토록 오랜 역사를 엮어온 민족국가는 드물다. 길게는 7, 8천 년, 줄여잡아도 3천년의 연륜을 헤아리게 된다.

그 역사의 연륜이 좁은 땅덩이에 쌓이고 보니 우리는 국토의 어디를 가더라도 유형, 무형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영광의 왕도에서 심심산골 하늘 아래 끝동네까지 아직도 생명을 잃지 않고 거기에 의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박물관 유리장에 진열된 유물들이란 어차피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실향유물들의 보호처일 뿐 전 국토가 박물관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유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에만 온전히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태백산맥 전체를 절집의 정원으로 끌어안은 부석사 가람배치의 장대한 기상과 그윽한 암곡동 계곡에서 쫓겨나 경주박물관 뒤뜰로 옮겨온 고선사탑의 애처로움은 국토박물관이라는 나의 표현에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토박물관의 참 모습과 참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외국을 관광하고 돌아오는 사람 중에는 대영박물관에 가보았더니 한국미술품이 너무 초라하더라는 식의 말을 아주 쉽게 해버리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그러나 이 말을 정확한 표현으로 고친다면 대영박물관의 한국미술품 컬렉션은 별볼일 없더라라고 해야 옳다.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흔한 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 습성이 있다. 가식의 화려함에는 곧잘 현혹되면서도 평범하고 소박한 가운데 진실과 아름다움이 있음은 쉽게 놓쳐버린다. 게다가 세상의 관심이 아직도 남의 문화에 대한 대책없는 선망과 모방에 쏠리다 보니 저 국토박물관의 유물이 말해주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국토박물관의 유물에 대한 친절한 안내글이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답사길에 문화재안내 표지판을 읽다 보면 저렇게 어려운 전문적 사항의 냉랭한 나열이 과연 관람자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기만 하며, 문화재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일반대중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술사를 전공으로 삼은 이후 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하면 미술에 대한 안목을 갖출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막연한 물음에 대하여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최선의 묘책은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것이었다. 예술을 비롯한 문화미란 아무런 노력없이 획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을 아는 비결은 따로 없을까? 이에 대하여 나는 조선시대 한 문인의 글 속에서 훌륭한 모범답안을 구해둔 것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그러한 사랑의 감정으로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나는 감히 국토박물관의 길눈이 되어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국토의 역사와 미학을 일상 속에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행복을 나누어 갖고 싶었다.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이 책은 월간 사회평론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제목 아래 연재한 글들에서 16회분을 묶은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글들을 그대로 재록한 것은 아니다. 불가피한 원고제한으로 미흡했던 설명과 빠진 부분들을 보완하고 때때로 새 글을 써서 삽입한 것도 있다. 이를 위하여 나는 애초에 내가 쏟았던 시간의 두배 이상을 할애해야 했으니 그것은 새집 짓기보다 헌집 수리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았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내가 지난 20년간 답사 다니면서 슬라이드 강의를 위하여, 또는 아름답거나 괴이한 풍광을 보는 순간 거의 습관적으로 찍어둔 것들이다. 따라서 일광과 계절을 고려한 전문적 노력이나 솜씨가 들어간 것은 아니다. 다만 꼭 필요한 몇 장만은 사진작가의 것을 이용하고 이름을 밝혀 두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나는 수많은 분들의 도움과 수고로움을 입었다. 내 비록 그분들의 이름을 여기에 일일이 기록하지 않지만 그 고마움만은 가슴깊이 새기면서 감사를 올린다. 그리고 나의 역마살을 용서해준 집사람과 두 아이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답사기를 쓸 것이다. 그 양이 얼마가 될지는 나 자신도 가늠치 못한다. 어림짐작에 국토의 절반, 남한땅을 다 쓰는 데만 50회는 족히 넘을 것 같으니 책으로는 서너 권의 분량이 될 것 같다.

국토박물관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과 지지자가 될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린다.

                                                                                                                                      1993. 4. 11.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1993 10 10일 초판 12쇄 발행본. 펴낸 곳 창작과 비평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1994 7 23일 초판 3쇄 발행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1997 7 25일 초판 2쇄 발행본.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 상 1998 10 19일 초판 1쇄 발행본.

 

 

*

 

 

사족(畵蛇添足);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창애(蒼厓) 유한준(兪漢雋)이 당대 수집가인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 발문 내용 중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게 되고 보면 모으게 되는데 그렇게 모으는 건 그저 쌓아두는 게 아니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지은이 유홍준선생이 원문을 그대로 외우지 못하고 자신 나름 소화하여 기억한 내용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말하였는데 이 문장은 원문을 뛰어넘어 여러 사람들에게 아직도 회자되는 아름다운 현대의 명문장으로 재탄생 되었다.

 

지은이 유홍준은 대한민국의 미술평론가 및 미술사학자, 교수, 작가. 제 3대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2025년 7월 20일 제17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되었다.

원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했고,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임명한 듯하다.

1993년 5월에 출판된 1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대한민국의 인문 도서 최초로 판매부수 백만 부를 돌파하며 전국적인 답사 열풍을 몰고 왔으며 주요 대형서점에서 60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독서계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시아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 게바라 평전  (2) 2026.07.04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0) 2026.06.27
노자 / 道德經  (0) 2026.06.14
맹자 / 孟子  (0) 2026.06.06
티벳 해탈의 書  (0) 202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