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시아誦

우리 한시 삼백수 (5언절구 편) / 정민 평역

by hawoo(하우/下愚) 2026. 6. 14.

우리 한시 삼백수5언절구 편

정민 평역

 

머리말

7언절구 편에 이어 5언절구 편 3백수를 다시 펴낸다. 공자는 시경(詩經)을 묶으면서 시경의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사무사는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뜻이다. 시를 쓴 사람의 생각에 삿됨이 없으니 읽는 사람의 마음이 정화가 된다. 이것이 내가 3백수의 상징성을 굳이 내세운 이유다.

앞서 7언시에 비해 글자 수는 줄었는데 평설은 대체로 더 길어졌다. 시인이 말을 아꼈기 때문에 감상자가 채워야 할 빈 여백이 그만큼 넓어진 탓이다. 고구려 을지문덕부터 구한말 이건창(李建昌)의 시까지 3백수를 작가의 생몰연대순으로 묶었다. 번번이 느끼는 일이지만 시 속에 그 시대의 표정이 숨김없이 묻어나는 것은 신기할 정도다. 을지문덕의 시는 절구 아닌 고시이나 54구의 형식으로 함께 묶었다.

.....

 

자연이 등장하고 그 속에 사람이 깃든다. 사물은 끊임없이 교감의 언어를 발신한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것도 내게 보내는 자연의 메시지 아닌 것이 없다. 사물 속으로 내가 들어가 그들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스스로 치유되는 한시의 정서 표달 방식은 세상을 제멋대로 주무르려고만 드는 현대인의 욕망을 향한 일종의 경고 같다.

.....

 

여기 묶은 작품들은 7언절구 편과 마찬가지로 근 10년 묵혀둔 것들이다. 이참에 전체적으로 한 차례 새로 다듬었다. 소리 중에 정채(精彩)로운 것이 말이고, 말의 정화가 글이다. 그 글 중에 가장 농축된 언어가 시다. 시는 인간의 언어 중 가장 고농도다. 이해가 잘 안 되고 어려워지는 것은 압축 파일 푸는 법을 몰라 그렇다.

시는 함축과 감성의 언어다. 삐끗하면 자칫 딴소리가 되기 싶다. 이 책에도 그런 실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읽기에 따라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다양한 독법의 하나로 견줘 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2014년 세밑 행당서실에서 정민

 

 

*

 

 

지족(知足)

 

을지문덕 乙支文德, 고구려 영양왕 때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주다與隋將于仲文〉

 

기찬 책략은 천문을 뚫고

묘한 계산은 지리 다했네.

싸움에 이겨 공이 높으니

족함을 알아 그만두게나.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전승공기고 지족원운지

 

우중문于仲文 고구려 정벌에 앞장섰던 수나라의 장수. 신책神策 귀신같은 계책.

묘산妙算 절묘한 계산. 원운지願云止 그만두겠다고 말하기를 원한다.

 

 

살수대첩 당시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다. 그냥 읽으면 밋밋하다. 행간을 알면 그렇지도 않다. 끝 구절은 《도덕경(道德經)》 44장에 나온다. “족함 알면 욕되잖고, 그침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갈 수가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또 32장에는 “처음 만들어지면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고 나면 그칠 줄 알아야 한다.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始制有名, 命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所以不殆)”라고 했다. 그러니까 4구는 “이길 만큼 이겼으니 이제 그만하시지! 까불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돌아가라”는 말이다. 상대의 부아를 돋우었다. 전쟁에 이길 만큼이란 말이 어디에 있나? 서로 간에 《도덕경》을 읽었다는 전제가 있다. 시를 받은 우중문은 분기가 탱천했겠지. 이 자식이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까부는 건가? 지형지물이 익숙지 않고, 도로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도 분기를 못 이겨 행군을 서둘렀다. 보급로를 확보 못해 살수에서 길이 끊겼다. 손도 못 써보고 유린당해 목숨 겨우 부지해 달아났다.

 

 

*

 

 

등불앞

 

최치원 崔致遠, 857-?

〈가을밤 빗속에서秋夜雨中〉

 

가을바람 괴로운 노래

세상 날 몰라주네.

창밖엔 삼경의 비

등불 앞 만 리 마음.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추풍유고음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고음苦吟 괴로이 읖조리다. 지음知音 지기(知己), 나를 알아주는 사람.

삼경三更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

 

 

홀로 깨어 듣는 밤 빗소리는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게 한다. 저 비 맞고 낙엽이 지리라. 빈털터리의 겨울은 더 슬플 것이다. 재주와 역량이 있으되 알아주는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열두 살에 당나라로 유학한 천재가 만 리 이역 하숙방에서 처정처정 가을 빗소리 들으며 쓴 시다. 제 살을 태우며 등불이 가물댄다. 못 가누는 마음이 만 리 길을 헤맨다. 창밖에는 빗소리 하염없고,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보자니 꼬물꼬물 제 속이 탄다. 고향이 그립지만 갈 수가 없다.

 

 

*

 

 

밤비

 

고조기 高兆基, ?-1157

〈산장의 밤비山莊夜雨〉

 

간밤 송당 내린 비에

베갯머리 냇물 소리.

새벽 뜨락 나무 보니

자던 새도 둥지 속에.

 

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작야송당우 계성일침서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棲

평명간정수 숙조미리서

 

평명平明 동틀 무렵. 미리未離 떠나지 않다. 보금자리, 둥지.

 

 

오늘따라 밖이 고요하다. 날 새기도 전에 부산 떨던 녀석들 어째 이리 잠잠한가? 희부윰 먼동이 튼다. 자꾸 궁금하다. 들창을 밀어 연다. 눈길이 먼저 나무로 간다. 새는 둥지 안에 여태 머리를 처박고 있다. 그제사 알겠다. 간밤 잠결에 냇물 소리를 들은 기억. 그래! 밤새 비가 왔구나. 숲이 젖어 둥지 밖으로 나서고 싶지가 않았던 게지. 나도 따뜻한 아랫목이 좋다. 오늘은 이렇게 놀자. 나는 들창으로 널 보고 너는 둥지에서 날 보며 유한(幽閑)한 하루해를 건너가 보자. 산속 집엔 여러 날째 찾는 이 없고.

 

 

*

 

 

조각달

 

이규보 李奎報, 1168-1241

〈저물녘에 바라보다晩望〉

 

이백 두보 노래한 뒤

건곤은 적막해라.

강산도 심심해서

조각달을 걸었구나.

 

李杜啁啾後 乾坤寂寞中

이두조추후 건곤적막중

江山自閑暇 片月掛長空

강산자한가 편월괘장공

 

조추啁啾 벌레의 울음소리, 여기서는 시를 읊조리는 소리. 건곤乾坤 하늘과 땅. 걸리다.

 

 

이백 두보가 아름다운 노래를 그친 뒤 천지는 적막 속에 빠졌다. 강산은 무료함을 못 견딘 나머지 저 하늘 곳집에서 먼지 앉은 조각달을 꺼내 와 허공 위에 걸어놓기에 이르렀다. 시인은 심심하게 하루해를 보내고 저물녘 문득 마루를 내려 섰겠지. 땅거미 내려앉는 먼 들판 위로 손톱달이 파르라니 떠 있었겠다. 저것마저 없었으면 저 넓은 하늘이 참 싱거웠겠구나 싶어 실없이 해본 소리다. 노래 없는 세상은 적막한 벌판이다. 시는 그 적막한 벌판 위로 떠오른 초승달이다.

 

 

*

 

 

당부

 

조인규 趙仁規, 1237-1308

〈아들들에게 보여주다示諸子〉

 

임금을 섬김에 충성 다하고

사물과 마주해선 지성 다하라.

원컨대 밤낮으로 부지런하여

부모 이름 더럽힘 없도록 하라.

 

事君當盡忠 遇物當至誠

사군당진충 우물당지성

願言勤夙夜 無忝爾所生

원언근숙야 무첨이소생

 

우물遇物 어떤 일을 처리함. 숙야夙夜 밤낮. 무첨無忝 욕되게 하지 말라. 이소생爾所生 너를 낳아준 사람.

 

 

아버지가 여러 자식들을 앞에 앉혀놓고 당부하는 말이다. 사실 이런 것이야 시라 하기가 좀 민망하다. 하지만 그 마음이 참 당당하다. 진충지성(盡忠至誠)이야 사람의 바탕에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나라 위해 힘 쏟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 거기에 성실성의 바탕을 지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4구의 ‘소생(所生)’은 ‘낳은 바’이니 부모를 말한다. 나는 너희들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누구의 자식을 과연 다르다는 그런 말을 듣고 싶다. 행여나 ‘애비가 누구야?’ 하는 손가락질은 받지 않았으면 한다. 불의한 방법으로 출세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거들먹거리는 것은 정말이지 바라지 않는다.

 

 

*

 

 

연꽃

 

최해 崔瀣, 1287-1340

〈바람 맞은 연꽃風荷〉

 

새벽 목욕 막 끝내고

거울 앞에 맥 빠져서.

천연스런 아름다움

화장 않아 더 예뻐.

 

淸晨纔罷浴 臨鏡力不持

청신재파욕 임경력불지

天然無限美 摠在未粧時

천연무한미 총재미장시

 

청신淸晨 해맑은 새벽. 이제 막 겨우. 임경臨鏡 거울 앞에 앉다. 불지不持 견디지 못하다. 온통. 미장시未粧時 아직 단장하지 않았을 때.

 

 

잔잔한 수면 위, 연꽃 한 송이가 이제 막 솟았다. 막 목욕을 마친 어여쁜 아가씨의 청초한 맵시다. 힘이 쪽 빠져서 고개 갸웃 숙이고 거울 같은 수면에 제 얼굴 비춰본다. 어여쁜 분단장은 하지 않았다. 이따금 이슬 떨궈 거울에 파문 인다. 그녀의 아름다움, 내 가슴이 뛴다. 두근거린다.

 

 

*

 

 

안분(安分)

 

정포 鄭誧, 1309-1345

〈자식에게 보여주다示兒〉

 

먹을 게 없으면 콩잎도 맛이 달고

입을 옷 없으니 칡베 옷도 좋다네.

따습고 배부른 즐거움만 구하면

얻지도 못한 채 해가 먼저 따르리.

 

乏食甘藜藿 無衣愛葛絺

핍식감려곽 무의애갈치

若求溫飽樂 不得害先隨

약구온포락 불득해선수

 

핍식乏食 먹을 것이 결핍됨. 여곽藜藿 콩잎, 거친 음식을 가르킴. 갈치葛絺 칡베, 올이 거친 옷감. 약구若求 만약 구한다면.

 

 

제목으로 보아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당부다. 먹을 게 없고 보면 명아주나 콩잎도 입에 달기만 하다. 입을 옷이 없고 보니 올 굵은 칡베 옷도 고맙기 그지없다. 따뜻한 거처에서 주린 것 모르는 삶이 과연 기쁘기만 할까? 육신의 욕망은 끝간 데를 모르는 법이어서 무절제의 나락에 빠져 몸을 망치고 만다. 아들아! 내가 네게 바라는 것은, 좋은 집에 좋은 옷 입고 기름진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아니다. 입는 것 먹는 것이야 다소 부족하더라도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마음, 주어진 삶에 는 감사하고, 부족한 대로 만족할 줄 아는 그런 삶을 네가 살아주었으면 한다.

 

 

*

 

 

칭찬

 

조식 曺植, 1501-1572

〈우연히 읊다偶吟〉

 

사람들 바른 선비 아끼는 것이

범 가죽 좋아함과 비슷하구나.

살았을 젠 못 죽여 안달하더니

죽은 뒤에 비로소 칭찬을 하네.

 

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인지애정사 호호피상사

生前欲殺之 死後方稱美

생전욕살지 사후방칭미

 

정사正士 뜻이 바른 선비. 방칭미方稱美 그제야 아름답다고 한다.

 

 

올곧은 선비 하나 기르기가 참 힘들다. 선비가 바른말 하거나 옳은 일을 하면 사방에서 죽일 듯이 물어뜯는다. 행여 그 말 때문에 제 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걱정이 되어서다. 세상 사람들이 선비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꼭 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살아 있을 적에는 이를 갈며 못 죽여 안달하다가, 막상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죽어 자빠지면 가죽을 벗겨 바닥에 깔고 어루만지며 애석해한다. 뼈는 갈아서 마시고, 발톱은 부적으로 차고, 고기는 고기대로 먹고, 가죽 위에 걸터앉아서,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죽은 뒤에 이름 남기면 뭐하나. 죽은 뒤에 가죽 남기면 누구에게 좋나. 무슨 일을 보고 속상해서 지은 시다.

 

 

*

 

 

인생

 

김인후 金麟厚, 1510-1560

〈충암 김정의 시권에 쓰다題冲庵詩卷〉

 

어디로부터 와서

어딜 향해 가는가.

오고 감 정처없고

백 년 계획 아득타.

 

來從何處來 去向何處去

내종하처래 거향하처거

去來無定蹤 悠悠百年計

거래무정종 유유백년계

 

종하처從何處 어느 곳으로부터. 정종定蹤 일정한 자취. 유유悠悠 멀고 아득한 모양.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돌아보면 사는 일이 참 덧없고 부질없다. 뜻대로 된 일이 없다. 늘 어긋나기만 했다. 돌이켜보니 아쉽다. 계획 세워 이룰 수 없다면 그런 계획 세워서 뭣하나. 꿈은 언제나 빗겨가기만 하고, 지나고 나서 좋았다 싶던 때는 있어도 눈앞의 현실은 언제나 차고 시리기만 했다. 정의를 꿈꾼 젊음의 의기는 시련과 좌절의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시집을 읽었다. 구름처럼 떠돌다 노을처럼 스러지는 것이 인생이다. 덧없는 백 년 인생이 꿈만 꾸다 가는구나.

 

 

*

 

 

꽃비

 

휴정 休靜, 1520-1604

〈쌍계사 방장에서雙溪方丈〉

 

앞뒤 산마루 흰 구름 가고

양편 시내엔 밝은 달 떴네.

스님 앉은 곳 꽃비는 지고

잠든 손님 곁 산새가 운다.

 

白雲前後嶺 明月東西溪

백운전후령 명월동서계

僧坐落花雨 客眠山鳥啼

승좌락화우 객면산조제

 

화우花雨 꽃비, 지는 꽃잎이 비 오듯 떨어짐.

 

 

쌍계사 방장에서 지은 시다. 지리산 자락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절집이다. 앞산 마루 뒷산 마루 모두 흰 구름 한 장이 배 깔고 누웠다. 동서로 가로질러 지나가는 시냇물엔 밝은 달빛이 내려와 도장을 찍어놓았다. 꽃잎은 비처럼 내리는데, 입정(入定)에 든 스님은 가부좌를 튼 채 아까부터 말이 없고 손님은 달콤한 잠이 들었다. 긴 밤 소쩍새 울음소리가 빈 골짝을 샅샅이 헤매고 있다.

 

 

*

 

 

반달

 

황진이 黃眞伊, 1516-?

〈반달을 노래함詠半月〉

 

곤륜산 옥 누가 깎아

직녀의 빗 만들었나.

견우와 이별한 뒤

속상해서 던졌다네.

 

誰斲崑山玉 裁成織女梳

수착곤산옥 재성직녀소

牽牛離別後 愁擲碧空虛

견우이별후 수척벽공허

 

짜개내다. 곤산옥崑山玉 옥의 산지로 유명한 곤륜산의 노란색 옥. 재성裁成 말라 만들다. 직녀소織女梳 직녀의 빗. 수척愁擲 수심에 겨워 내던지다.

 

 

황진이, 그녀의 시는 참 재치가 있다. 얼레빗 같은 노란 반달이 반공중에 걸려 있다. 누가 쓰던 걸까. 누군가 곤륜산의 좋은 옥을 캐어다가 마르고 깎아 직녀에게 선물했겠지. 그 빗으로 매일 곱게 단장하며 견우와 사랑을 속삭였겠다. 하지만 견우가 내 곁을 떠나 은하수 저편으로 건너가 날마다 함께 있던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뒤로 얼레빗은 이제 쓸모가 없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굴 위해 머리 빗을 일이 없다. 곱게 단장할 일이 없다. 속이 상해서 푸른 허공에 냅다 던져버린 그녀의 빗은 지금도 허공에 걸려 저렇게 빛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같이.

 

 

*

 

 

비단 적삼

 

이매창 李梅窓, 1573-1610

〈술 취한 손님에게 주다贈醉客〉

 

취한 손님 비단 적삼 잡아 당겨

손길 따라 비단 적삼 찢어지네.

그까짓 비단 적삼 아깝잖아

은정마저 끊어질까 염려할 뿐.

 

醉客挽羅衫 羅衫隨手裂

취객만라삼 나삼수수렬

不惜一羅衫 但恐恩情絶

불석일라삼 단공은정절

 

잡아당기다. 나삼羅衫 비단 적삼. 수수隨手 손길을 따라. 불석不惜 아깝지 않다. 은정恩情 은애하는 마음.

 

 

술 취한 손님이 내가 좋다고 자꾸 비단 적삼을 끌어당긴다. 예를 잃은 거친 사랑은 싫다. 민망해 팔을 빼니 그 서슬에 적삼이 찢어지고 만다. 찢어진 옷이야 다시 꿰매면 된다지만 찢긴 마음이야 어이 다시 꿰매리. 사랑하는 마음마저 덩달아 끊어질까 두렵다. 서로의 얼굴 다시 볼 수 없게 될까 걱정이다. 님이여! 아무리 길가의 버들, 담장 너머 핀 꽃이라지만 함부로 꺾는 무례는 싫다. 처음 지녔던 설렘, 길이 간직하고 싶다. 저만치 떨어져 앉았던 거리,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

 

 

다짐

 

이식 李植, 1584-1647

〈제야除夜〉

 

작년에도 이 사람

올해도 같은 사람.

내일은 새해니

같은 사람 되지 말자.

 

去年猶是人 今年猶是人

거년유시인 금년유시인

明年是明日 莫作每年身

명년시명일 막작매년신

 

그대로, 똑같이. 막작莫作 되지 말자.

 

 

한 해가 저무는 언덕에 서면 새로운 다짐이 많다.

새해에는 이런 걸 해야지. 이렇게 살아야지. 이러지는 말아야지. 담배도 끊고 술도 줄이고 가족과의 시간도 더 많이 가져야겠다. 이런 각오들이 말짱한 헛맹세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해가 바뀔수록 다짐의 종류가 늘어간다. 오늘 또 한 해가 저문다. 그래 봤자 하루해가 저무는 것일 뿐인데 이상스레 마음이 새삼스럽다. 지키지도 못할 그렇고 그런 다짐으로 한 해를 시작하진 않겠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싶다. 타성에 젖은 내 삶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다.

 

 

*

 

 

두모습

 

송시열 宋時烈, 1607-1689

〈멋대로 읊조림漫吟〉

 

눈이 진흙 만나니 더러워지고

솔이 서리 맞으면 더욱 푸르지.

인정에도 두 가지 모습 있나니

이 일은 어느 쪽이 합당할는지.

 

雪遇泥還染 松迎霜益靑

설우니환염 송영상익청

人情有兩樣 玆事孰稱停

인정유량양 자사숙칭정

 

 

설우니雪遇泥 눈이 진흙과 만나다. 환염還染 도로 더러워지다. 양양兩樣 두가지 모양. 자사玆事 이 일. 칭정稱停 공정하고 합당함, 칭정(稱亭)으로도 쓴다.

 

 

흰 눈이 진흙탕에 떨어지면 함께 더럽혀진다. 서리 맞은 풀들이 모두 시들 때, 소나무는 독야청청 푸르다. 본래 타고난 고결한 바탕을 더럽혀 진흙 밭에 함께 뒹구는 인간이 있다. 평소에는 남과 다름없이 보이다가 역경 속에서 굳건한 정신이 더욱 빛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진흙탕에 떨어진 흰 눈송이인가? 서리 속에 외려 푸른 세한(歲寒)의 소나무인가?

 

 

*

 

 

눈 오는 밤

 

남씨 南氏, 생몰 미상

〈손녀를 곡하며哭孫女〉

 

여덟 해를 살면서 일곱 해 앓아

돌아가 눕는 것이 네겐 편하리.

오늘 밤 눈까지 이리 오는데

어미 떠나 추운 줄 모르니 그게 슬프다.

 

八年七歲病 歸臥爾應安

팔년칠세병 귀와이응안

只憐今夜雪 離母不知寒

지련금야설 이모불지한

 

귀와歸臥 돌아가 눕다. . 지련只憐 다만 불쌍하다. 이모離母 어미를 떠나다.

 

 

돌 지나며 시름시름 앓던 손녀가 여덟 살에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할머니 아파! 하며 울고 보채던 손녀를 언 땅에 묻고 왔다. 그래 살아서 그토록 힘겹고 아플 양이면 지하에 편히 몸 뉘고 쉬는 것이 너를 위해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저렇게 눈이 오시는데, 너 누운 땅속은 한기가 뼈에 스밀 터인데 따스한 제 어미 품을 떠나 추운 줄도 모르고 그 깊은 어둠 속에 눈 감고 누워 있을 네 모습을 떠올리면 이 할미의 억장이 무너진다. 평소에 아무도 부인이 시를 짓는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의 이 시를 보고 온 식구가 또 울었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

 

 

남한산성

 

구음 具崟, 1614-1683

〈남한산성을 지나면서過南漢〉

 

이 땅 새롭게 전쟁 겪은 뒤

우리 백성 백골이 많기도 해라.

날은 차고 달빛은 괴롭기만 해

깊은 밤엔 차마 못 지나겠네.

 

此地新經戰 東人白骨多

차지신경전 동인백골다

天寒月色苦 不忍夜深過

천한월색고 불인야심과

 

 

경전經戰 전쟁을 겪다. 불인不忍 차마 못하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남한산성을 지나다 본 광경을 노래한 것이다. 풀섶에 달빛 받아 희게 빛나는 것이 있다. 가만 보니 지난 전쟁 때 죽은 해골이다. 섬뜩해서 발걸음 재촉하자 이번엔 길가에 또 뼈가 뒹군다. 날씨는 차고 매운데 침침한 달빛이 고맙지 않고 괴롭다. 원한 맺힌 귀신의 호곡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해골들이 일어나 내 발을 붙들 것만 같다. 남한산성 오르는 길, 길가에 널브러진 해골들 보니 그때의 아비규환이 어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땅속에 묻히지도 못한 죄 없는 백성들 안쓰럽고 죄스러워 차마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꼼짝할 수가 없다.

 

 

 

*

 

 

발자국

 

이양연 李亮淵, 1771-1853

〈들판의 눈野雪〉

 

눈 길 뚫고 들길 가도

어지러이 가지 않네.

오늘 아침 내 발자국

뒷사람의 길 될테니.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천설야중거 불수호란행

今朝我行跡 遂爲後人程

금조아행적 수위후인정

 

천설穿雪 눈을 뚫고서. 불수不須 모름지기 ~하지 않는다. 호란胡亂 거칠고 어지럽게.

수위遂爲 마침내 ~이 되다. 후인정後人程 뒷사람의 길.

 

 

흰 눈이 소복이 내린 아침. 순결한 대지 위에 첫 발자욱을 찍으며 간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맵다. 덮인 눈이 길을 지웠다.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뒤돌아 보면 내 발자욱만 오롯이 남았다. 걸음을 흩트리지 말아야지. 삐뚤게 걸어서는 안 되겠다. 내 뒤로 오는 사람은 눈길에 남은 내 발자욱을 나침반 삼아 뒤따라 올 테니. 내가 길 잃고 헤매면 그들도 덩달아 길을 놓칠 것이다.뚜벅뚜벅 똑바로 걸어가야겠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어느 눈 온 날 아침. 신발 끈을 고쳐 매고 하루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이런 정신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 이 시는 그동안 작가가 엉뚱하게도 알려져왔다. 글자도 몇 자씩 차이가 있다. 김구 선생도 이 시를 즐겨 썼다.

 

 

*

 

 

우리 한시 삼백수 5언절구 편. 정민 평역

2014 12 16 1 2쇄 발행본. 펴낸 곳 김영사

 

 

'여시아誦'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산 정약용 시선  (0) 2026.06.28
이태백 / 李太白  (0) 2026.06.21
우리 한시 삼백수 (7언절구 편) / 정 민 평역  (0) 2026.06.06
최영미의 어떤 시, 안녕 내사랑  (2) 2026.05.30
걸림 없이 살 줄 알라  (1)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