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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아誦

돈詩 / 정끝별 엮고 해설

by hawoo(하우/下愚) 2026. 4. 5.

 

돈에 울고 시에 웃다

 

/ 정끝별 엮고 해설

 

책을 펴내며

 

살다에서 온 산다사다에서 온 산다는 발음이 같다. 우리는 사면서 사는 존재들이고, 한발 나아가면 인생이 돈이기도 하다. “수단이 목적으로 상승한 가장 완벽한 예가 돈이라 했던 이는 짐멜Georg Simmel이었고, “세상이 신을 위하여에서 돈을 위하여로 바뀌었다.”고 개탄했던 이는 니체Friedrich Nietzsche였다. 인간이 만들어 낸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돈이었으나 오늘날 돈은 인간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신의 자리를 대신한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의 의미와 방향을 결정하게 되었다.

나는 이 산다라는 의미를 쓰다와 연결시켜 보고 싶었다.

살다의 짝패인 쓰다’, ‘사다의 짝패인 쓰다, ‘생각하다와 짝패인 쓰다와 덧대 놓고 싶었다. 이른바 돈과 시!

돈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면, 시는 인간 정신 혹은 인간 언어의 꽃이다. 돈과 시가 산다로 압축되는 우리 삶의 꽃이라는 점에서는 그 뿌리가 같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반대 지점이다. 드물게 돈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시이고, 드물게 돈으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시이다. 그런 시에 인생을 거는 시인이란 대체로 돈 앞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고, 그럼에도 돈 앞에서 쉽사리 굽히지 않는다. 무능하기 때문에 무관해지고, 무관하기 때문에 무심해지고 자유로운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돈에 대해 속수무책인 시와 시인은, 자본주의의 적이다. 그것도 강적强敵이다. 하여 시를 이 자본주의 사회의 마지막 보루, 시인을 자본에 대항하는 유나바머**라고 한다면 대책없는 시인의 과대망상일까.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돈에 관한 시를 보면 통쾌했다.

속되다고 하는 것과 고상하다고 하는 것이 만나, 둘 중 하나가 서로인 척한다는 점에서 키치Kitsch라고나 할까. 그렇게 눈여겨 보기 시작한 시편들이 모이면서 이름하여 -라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 이 돈-안에서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다 얘기할 수 있겠군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연재에 들어갔다.

이 책은 2013년 봄부터 2014년 가을까지 경향신문-라는 코너를 빌려 연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다.

*

우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한 단계 더 고착된 호모 머니쿠스. 이런 시대일수록 돈으로 수렴되지 않는,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영역을 상상해 보는 것이야말로 작은 혁명이다. 자본주의의 바깥, 아니 돈의 바깥에서 사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민주주의에 가까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돈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삶은 얼마나 비루하고 염치없는 삶이겠는가. -들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유나 바머 ;

1942년 시카고 태생의 천재 수학자이자 테러리스트 시어도어 카진스키. 과학기술의 진보와 현대 문명이 인류를 파괴한다고 믿었던 문명혐오주의자. ‘유나바머UnaBomber’대학교University와 항공사Airlines에 폭탄을 보낸 사람Bomber’이라는 뜻으로 미국연방수사국 FBI가 부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 별명이다.

 

 

                                                                                            2014년 가을에 정끝별 쓰다

 

 

 

봄春

 

벚꽃도 노점도 죄다 생계형이다.

꽃피는 철이면 실업률이

잠시 낮아지는 까닭이다.

 

꽃들은 제 흥에 겨워 저절로 터지고

누군가는 꽃구경에 봄바람 들고

또 누군가는 꽃 그늘에

생업의 좌판을 펼쳐 놓는 것

 

봄날은 그런 것.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황금광맥, 일확천금, 인생역전, 일장춘몽이 우르르 딸려 나와서일까. 노다지라는 말은 우리를 울렁이게 한다. 근대 조선에 금광이 개발되던 시절, 금덩이가 발견되면 미국인들이 다급히 외쳤던 “노터치no touch”를 노다지라 들었던 데서 노다지가 유래했다는 설說이 있다. 경상도 말로 ‘노다지’는 ‘언제나’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노다지, 노다지, 되뇌노라면 노다지 캐러 가자고 말 건네고 싶어지고 이다지 노다지 꽃다지 캐러 가자, 그다지 마구다지 도라지 캐러 가자,가 노래처럼 입에 따라붙곤 한다.

“모든 순간이 다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다. 그 꽃봉오리들 다아 노다지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으니(〈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모든 순간을 꽃 본 듯이 해야 하고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매순간 노다지를 캐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늘 지금의 꽃봉오리를 따는 사람일게다.

“마악 피어나려고 하는/ 꽃송이,/ 그 위에 앉아 있는 지금,”(〈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바로 지금, “지층의 금과도 같은/ (아, 노다지를 찾았다!)”(〈몸을 꿰뚫는 쓰라림과도 같은〉)고 외칠 수 있기를.

 

 

*

 

 

와룡마을 / 노향림

 

그 마을의 남자들은 늘 유유자적이다.

바닷일도 밭일도 모두 여자들의 몫이다.

일을 피해 집을 나온 노인들은 팔각 정자에서

아침부터 윷놀이에 열중한다.

얼씨구, 도 잡고 걸, 100원짜리 동전 내기에

이들은 점심도 굶고 해 질녘까지 놀고들 있다.

 

꽃 피고 아지랑이 핀 봄날 누가 집에 앉아 있간디,

집에만 가면 밥맛 싹 달아나 부러, 최 영감이 한마디 한다.

오늘도 아내가 리어카를 끌고 바닷가에 나가

굴딱지 더미를 가득 실어 와 손톱이 닳도록

굴 까기에 여념이 없을 텐데 아예 아랑곳 않는 투다.

 

해가 지자 노인들은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아리랑 몇 대목을 따라 부르며 마지못해 일어선다.

동전을 제법 많이 따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최 영감은

집보다 ‘호박다방’에 가 목부터 축이자고 한다.

점심 굶은 일행은 먼저 붕어빵 가게로 몰려간다.

배가 고픈 길에 붕어빵을 열심히 나눠 먹는다.

 

저마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커피 맛 좋다고

젊은 마담에게 한마디씩 하는데 갑자기

문창 밖으로 낯익은 아낙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메, 남은 뼈 빠지게 굴 까는데,

영감 돈이 썩어나서 커피 사 묵어?

그의 아내가 최의 귀때기를 잡고 끌고 나간 것은

잠깐이었다. 남은 노인들은 날마다 보는 풍경이라는 듯

커피를 마저 마신다 다방 안은 다시 조용하다.

 

 

 

숱한 와룡마을 중 내가 아는 와룡마을은 산과 밭에 이어 개펄과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를 간신히 빠져나온 용이 산을 오르다 말고 드러누운 형상의 마을이라서 그 이름이 와룡臥龍이다. 80여 가구 남짓한 대부분의 60대 중반을 훌쩍 넘은 고령화 마을인데도, 바닷일 반 농사일 반으로 사계절이 분주하다. 하나 그 분주함은 오롯이 할머니들 몫이다. “꽃 피고 아지랑이 핀 봄날”, 할머니들은 아침부터 “리어카를 끌고 바닷가에 나가” 손톱이 닳도록 굴을 까고, 할아버지들은 “팔각정자”에서 동전 내기 윷을 논다. 다방 출입에 군입질, 이것도 심심하면 고기 구워 소주 한잔 돌리다 낮잠 한숨 푹 자는 그야말로 상팔자 할아버지들이다.

‘와룡’이라는 이름을 떠받들 듯 이마을 남자들은 빈둥빈둥 드러누워 산다. 한평생을 그리 노세 노세 했었다는 듯, 늙어서까지 노는 품새가 참 호기롭다. 하나 품새와 사세는 다른 법, 세상은 “뼈 빠지게” 돈을 번 자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는 법.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귀때기를 잡고 끌고 나간 것은/ 잠깐이었다. 남은 노인들은 날마다 보는 풍경이라는 듯/ 커피를 마신다 다방 안은 다시 조용하다.”암만 봐도, 이 다반사 풍경은, 마을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지 싶다.

 

 

*

 

 

한 수 위 / 복효근

 

어이, 할매 살라먼 사고 안 살라면 자꼬 만지지 마씨요

―때깔은 존디 기지**가 영 허술해 보잉만

먼 소리다요 요 윗도리가 작년에 유행하던 기진디 우리 여펜네도

요거 입고 서울 딸네도 가고 마을 회관에도 가고

벵원에도 가고 올여름 한려수도 관광도 댕겨왔소

물도 안 빠지고 늘어나도 않고

요거 보씨요 백화점에 납품허던 상푠디

요즘 겡기가 안 좋아 이월 상품이라고 여그 나왔다요

헹편이 안 되먼 깎아 달란 말이나 허제

안즉 해장 마수걸이도 못했는디

넘 장사판에 기지가 좋네 안 좋네 어쩌네

구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 허들 말고

어서 가씨요

―뭘 내가 돈이 없어 그러간디 나도 돈 있어라

요까이 껏이 허면 얼마나 헌다고 괄시는 괄시오

마 넌인디 산다먼 내 팔처 넌에 주지라 할매 차비는

빼드리께

뿌시럭거리며 괴춤에서 돈을 꺼내 할매 펴 보이는 돈이

천 원짜리 구지폐 여섯 장이다.

―애개개 어쩐다요

됐소 고거라도 주고 가씨오 마수걸이라 밑지고 준 줄

이나 아씨오 잉

못 이긴 척 배시시 웃는 할배와

또 수줍게 웃고 돌아서는 할매

둘 다 어금니가 하나도 없다

 

 

**기지 ; 옷감, 천

 

 

연륜이 더해 갈수록 물건 값을 잘 깎게 된다. 치고 들어갈 때와 빠질 때, 한발 물러설 때와 돌아설 때, 눙쳐야 할 때와 너스레 떨어야 할 때에 대한 감이 더 좋아진다. 그 노하우를 물어신다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상대를 존중하라, 그리고 마음을 읽으라!

구수한 고향 풍경은 “어이, 할매 살라먼 사고 안 살라먼 자꼬 만지지 마씨오”라는 할배의 첫수부터 시작한다. “때깔은 존디 기지가 영 허술해 보잉만”, 할매가 한발 빼면서 받는다. 다음 수는 중중모리 속사포에 강도가 센, “어서 가씨오” 다. 이쯤에서 눙과 너스레의 변화구가 필요하다. 흥정과 무관한“괄시” 운운이 또 한 수다. 그러니 “차비는 빼드리께” 정도로 받고 친다. 여기서 흥정이 끝난다면 할매할배의 장구한 연륜을 간과한 리얼리티의 실패다. 괴춤에서 밑천을 드러내듯 눈꼬리를 길게 낮추며 마지막 패를 던지는 할매, 급기야 ‘마수걸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한발 물러서는 할베!

그런데 할배는 왜 “못 이긴 척 배시시 웃는” 것이며 할매는 왜 “또 수줍게 웃고 돌아서는” 것인가, 마치 수작酬酌하는 연인들처럼. 둘 다 어금니가 하나도 없어 서로에게 생채기 낼 일은 없으리니, 우리들 사랑 또한 이리 “한 수 위”라면!

 

 

*

 

 

. 엮고 해설 정끝별.

2014103011쇄본. 발행처 마음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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