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미학산책』 / 정민
-한시의 언어 미학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갯빛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崖」란 글에는 마을의 꼬마가 천자문을 배우는 데 게으름을 부리자, 선생이 이를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 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 천자문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말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이다. 그러고 보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했다. 꼬마의 생각에는 암만해도 하늘이 검지 않고 푸른데, 책 첫머리부터 당치도 않은 말을 하고 있으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고 만 것이다.
저 까마귀를 보면, 깃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지만, 홀연 유금乳金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석록石綠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치면 자주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하더니 비췻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또한 괜찮다. 저가 본디 정해진 빛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버린다. 어찌 그 눈으로 정하는 것뿐이리요,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정해버린다.
연암이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에서 한 말이다. 천자문이 푸른 하늘을 검다고 가르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았던가? 까마귀의 날갯빛 속에 숨겨진 여러 가지 빛깔을 관찰한 적이 있었던가? 연암은 이렇듯 시인에게 죽은 지식, 고정된 선입견을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한 눈과 열린 가슴으로 세계와 만날 것을 요구한다.
사물이 심장부에 곧장 들어가 핵심을 찌르려면 죽은 정신, 몽롱한 시선으로는 안 된다. 시인은 천지현황의 나태한 관습을 거부하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선입견에 붙박혀 간과하고 마는 까마귀의 날갯빛을 살피는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 생동하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포착되는 물상 속에 감춰진 비의秘儀를 날카롭게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다. 시인은 그 사원의 제사장이다. 시는 촌철살인의 미학이다. 대저 시인은 천기를 누설하는 자이다. 시를 쓰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 나는 것이 아니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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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시는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假託하여 짓게 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귀와 눈으로 들어와서 단전 위를 맴돌다가 끊임없이 입과 손을 따라 나오니, 시인과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어, 단지 시인의 입과 손을 빌려 시가 언어로 형상화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을 언어로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다. 따라서 시는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 시인이 직접 다 말해서는 안 된다.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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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과 코골기
다시 연암에게로 돌아가자.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의 한 토막이다.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의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의 아이가 서로 맞대고 귀를 기울려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耳鳴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는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하며, 불을 부는 듯, 솥이 부글부글 끊는 듯, 빈 수레가 덜그럭거리는 듯하였다. 들이마실 때에는 톱을 켜는 것만 같고, 내쉴 때는 돼지가 꽥꽥거리는 듯하였다.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왜 연암은 난데없이 이명과 코골기를 들고 나왔을까? 이명은 자기만 알고 남은 결코 알 수가 없다. 코골기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만 모른다. 사람들이 안목이 없어 나의 이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자아도취의 이명증에 걸린 꼬마이다. 남의 적절한 지적에도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사람은 코고는 버릇이 있는 시골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시인들이 자신의 이명에는 쉽게 도취 되면서, 자기의 코고는 습관은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암의 말을 더 흉내내면,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화이니, 만약 그가 병 아닌 어떤 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 으스대는 양을 어찌 볼 것이며,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발끈하니, 만약 그의 병통을 지적해준다면 그 성내는 꼴을 또 어찌 차마 볼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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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부치는 편지 / 이안눌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흰머리 어버이 근심할까 저어하여,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이가 천장인데
금년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말하네.
寄家書 기가서
欲作家書說苦辛 욕작가서설고신
恐敎愁殺白頭親 공교수살백두친
陰山積雪深千丈 음산적설심천장
却報今冬暖似春 각보금동난사춘
선조 때 시인 이안눌李安訥의 「寄家書기가서」란 작품이다. 이안눌은 평생에 두보의 시를 일만 삼천 번을 읽었다는 시인이다. 그가 함경도 북평사의 벼슬을 살러 북방에 가 있을 때 집에 편지를 보내면서 지은 시이다. 문집에 보면 편지를 받고 지은 시가 위 이 바로 앞에 실려 있다. 그 사연인 즉, 지난해 집에서 보낸 편지와 겨울옷을 해가 넘겨서야 받았는데, 집 식구는 남편이 변방에서 고생하는지라 야윈 것도 모르고, 옷을 예전에 입던 옷 치수에 맞춰 보낸 까닭에 헐겁기 그지없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위의 시는 그 편지와 옷을 받고 지은 시이다. 따뜻한 남쪽 고향을 떠나 북풍한설 휘몰아치는 낯선 변방에서 키를 넘게 쌓이는 눈과 혹독한 추위 속에 보낸 겨울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몸도 견디다 못해 예전 옷이 헐거울 정도로 야위었다. 이러한 괴로움을 편지에 쓰려하니 안 그래도 변방에 자식을 보내놓고 근심에 쌓여 계실 늙으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도리어 ‘어머님! 이번 겨울은 마치 봄처럼 따뜻합니다.’ 하는 거짓말을 적고 말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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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음 / 송한필
간밤 비 맞고서 꽃을 피우곤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누나.
슬프다 한 해 봄날의 일이
비바람 가운데서 오고 가노메.
偶吟 우음
花開昨夜雨 화개작야우
花落今朝風 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 가련일춘사
往來風雨中 왕래풍우중
송한필宋翰弼의 「우음偶吟」이다. 1구와 2구는 다섯글자가 정연한 대구를 이루었다. 꽃을 피운 것은 ‘작야우昨夜雨’이고, 꽃을 떨군 것은 ‘금조풍今朝風’이다. 간밤 비 맞고 핀 꽃이 아침 바람에 진흙탕 속에 잎을 떨구었으니, 겨우내 눈을 아끼고 망울을 부퍼 마침내 꽃 피운 보람은 당초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시인을 이를 ‘가련可憐’이란 한마디로 압축했다. 한 해 봄 일이 비바람 가운데 오간다 하여, 우리네 인생살이도 풍파속에 덧없음을 보였다. 아름다운 자태를 선뵐 겨를도 없이, 가꾼 보람 허망하게 떨어진 꽃잎들이 세상에 어디 한둘이겠는가? 바람은 언제나 딴 데서 불어오고 그 불공不公을 탓하기엔 꽃잎의 힘은 너무 가녀리다. 떨어진 꽃잎에 정이 촉발되어 ‘일춘사’가 ‘일생사’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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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사 / 양경우
탱자나무 울타리에 낮은 사립 닫아걸고
참을 내간 아낙네는 돌아올 줄 모르네.
멍석에 나락 쬐는 추녀 밑은 조용한데
병아리는 짝을 지어 울 틈새로 나온다.
村事 촌사
枳殼花邊掩短扉 지각화변엄단비
餉田邨婦到來遲 향전촌부도래지
蒲茵曬穀茅檐靜 인려쇄곡모담정
兩兩鷄孫出壞籬 양양계손출괴리
양경우梁慶遇의 「촌사村事」란 작품이다. 길 가던 나그네는 목이 말라 물이라도 한잔 얻어 마실까 싶었겠다. 길가 집은 번듯한 담장도 없이 가시 많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둘러쳤다. 들여다봐도 인기척이 없다. 주인 아낙은 참을 내러 들에 갔는지 낮은 사립을 비스듬히 닫아걸었다. 처마 밑 양지녘에는 멍석을 깔고 갓 거둔 곡식을 말리려 널어 놓았다. 고요하다.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주인 없는 빈집 터진 울타리 사이로 병아리떼가 뿅뿅뿅 짝을 지어 나서고 있다. 오랜만에 마음 놓고 포식을 해볼 참이다. 한 폭의 정겨운 풍경화이다. 까치발을 하고 주인 없는 담장 안을 들여다보는 시인과, 천연덕스럽게 삐약대며 곡식을 향해 약진하는 병아리떼의 행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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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예종 때 정습명鄭襲明도 기이한 재주와 웅위한 도량을 지녔으되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므로 「석죽화石竹花」란 작품을 지어 자신의 심경을 기탁하였다.
석죽화 / 정습명
세상 사람들 모란을 사랑하여
동산에 가득 심어 기르네.
뉘라 알리 황량한 들판 위에도
또한 좋은 꽃 떨기 있음을.
시골 방죽 달빛이 스민 듯 고운 빛깔
언덕 나무 바람결에 풍기는 향기.
땅이 후져 공자님네 있지를 않아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기누나.
石竹花 석죽화
世愛牧丹紅 세애목단홍
栽培滿園中 재배만원중
誰知荒草野 수지황초야
赤有好花叢 적유호화총
色透村塘月 색투촌당월
香傳隴樹風 향전롱수풍
地偏公子少 지편공자소
嬌態屬田翁 교태속전옹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사랑함은 꽃을 사랑함이기보다 부귀를 붙쫓음이다. 붉고 농염한 자태, 동산 가득 대접을 받으며 호사롭게 피어난 모란. 부러울 것이 없는 당당한 모습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황량한 들판 가운데에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 떨기가 있는 줄을. 그 빛깔은 마치 시골 방죽 위에 뜬 달빛이 스민 듯 애연히 고운 색조를 띠고 있고, 언덕 너머로 바람은 은은한 향기를 불어간다. 애호하는 이 하나 없고, 눈길 주는 이 하나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석죽화.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기만 하면 공자님네들도 다투어 자신의 동산 가운데 심어놓자 하련만, 이 황량한 벌판을 그들이 왜 찾겠는가.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길 가는 농부의 무심한 눈길에 답할 뿐이다. 정습명은 황량한 들판에서 알아주는 이 없어도 제 빛깔 제 향기를 바람결에 실어 나르는 석죽화, 즉 패랭이꽃의 고결한 자태를 이야기할 뿐이다. 모란을 시샘하지도, 공자의 안목 없음을 탓하지도 않았다. ‘애이불원哀而不怨’, 즉 슬퍼하되 원망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를 이름이다. 훗날 이 시를 읽게 된 예종은 “여태도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있었더란 말이냐?”하고, 그를 즉각 옥당으로 불러 올렸다 한다. 『파한집』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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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 / 최충
뜨락 가득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
둘러앉은 산빛은 뜻밖의 손님.
솔바람 악보 없는 가락 울리니
소중히 지니일 뿐 전할 수 없네.
絶句 절구
滿庭月色無烟燭 만정월색무연촉
入坐山光不速賓 입좌산광불속빈
更有松弦彈譜外 경유송현탄보외
只堪珍重未傳人 지감진중미전인
고려 때 최충崔沖의 「절구絶句」이다. 달빛을 등불 삼아 자리를 벌이자, 청하지도 않은 손님 청산이 슬그머니 차지하고 들어와 앉는다. 손님이 왔으니 풍악이 없을소냐. 솔바람은 악보로 옮길 수 없는 미묘한 곡조를 연주한다. 맑고 상쾌한 경지다. 이 거나하고 해맑은 운치를 어찌 말로 다하랴.
‘소이부답笑而不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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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사 / 김삼의당
밤이 깊어 오경이 가까웠건만
뜨락 가득 가을 달은 밝기도 하다.
이불 쓰고 억지로 잠을 청해도
님의 곁에 이르면 깨고 말았네.
夜深詞 야심사
夜色迢迢近五更 야색초초근오경
滿庭秋月正分明 만정추월정분명
凭衾强做相思夢 빈금강주상사몽
才到郞邊却自驚 재도랑변각자경
김삼의당金三宜堂의 「야심사夜深詞」이다. 오경이 가까웠다 했으니 그녀는 지금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온 뜰을 환히 비추는 달빛, 그 달빛 아래에선 조그만 것 하나 보이지 않을 것이 없다. 그녀는 혹 달빛 비친 환한 뜨락으로 님이 성큼성큼 들어서실 것만 같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오시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내다보는 마음은 쓸쓸하다.
달빛은 그리움의 빛깔처럼 뜨락을 환히 비추다가 점점 그림자를 길게 누이며 서편으로 떨어져 간다. 달빛이 사위어지듯 그녀도 기진하여 자리에 누웠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피곤에 지쳐 깜빡 잠이 들기도 하지만 님을 만나 무슨 말을 하려 하면 한마디 채 건네기도 전에 놀란 잠이 깨고야 말았다. 님을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고대했는데, 정작 만나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것이 깨고 나서도 그녀는 말할 수 없이 아쉬웠다. 생시에 님을 만날 도리가 없어 밤마다 꿈길을 찾아 나서는 마음, 이것이 사랑의 마음이다. 그렇게 어렵게 님을 만나고선 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놀랍고 두근거려 꿈을 깨버리고 마는 것, 이것이 그리움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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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운강 (자술, 몽혼) / 이옥봉
근래 안부는 어떠신지요
사창에 달 떠오면 사무치는 그리움.
꿈속 넋이 만약에 자취 있다면
문 앞의 돌길이 모래로 변했으리.
贈雲江 (自述, 夢魂) 증운강 (자술, 몽혼)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便成沙 문전석로변성사
이옥봉의 「증운강贈雲江」, ‘自述’ 또는 ‘夢魂’으로도 불리는 시다.
근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보아 님이 그녀를 찾은 것이 이미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달 떠오는 밤 사창 속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말하여, 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3 · 4구의 과장된 언술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그녀는 밤마다. 님을 만나러 길을 나서니, 만일 꿈속의 일이 자취로 남는다면 그 많은 밤마다의 꿈은 집 앞의 돌길이 다 닳아 모래로 변하기에 충분하리라는 것이다. 남들이야 편히 잠잔다고 할 줄 몰라도 굳이 잠을 청하는 것은 졸음이 와서가 아니다. 꿈길밖에는 님을 만날 길이 없으니, 꿈에서라도 만나기 소원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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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시 가운데서도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남정네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평생 고생만 하다 떠난 아내이기에 가슴에 저미는 아픔이 유난스럽다.
이런 시를 망자를 애도하는 시라 하여 도망시悼亡詩라고도 하는데 몇 작품을 함께 보기로 하자.
부인만 / 이계
시집올 제 해온 옷이 반 넘어 그대로니
궤를 열고 살펴보다 더욱 맘을 상하네.
평생 좋아하던 것을 함께 담아 보내서
빈 산에 다 맡기니 티끌되어 스러지라.
婦人挽 부인만
開箱點檢益傷神 개상점검익상신
平生玩好俱資送 평생완자구자송
一任空山化作塵 일임공산화작진
이계李烓의 「부인만婦人挽」이다.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버리고, 땅에 묻으려고 아내의 옷가지를 뒤적이다 목이 메이고 만 노래다. 아내의 옷상자를 꺼내보았다. 시집올 때 지어온 옷이 반 넘어 그대로다. 아껴 입느라고 그랬던가. 겨우 이렇게 살다 가고 말 것을. 시집올 때 옷이 반 넘어 그대로라고 했으니 그녀가 아직 청춘의 나이임을 알 수 있다.
시집올 때 한 벌 한 벌 새로 옷을 지을 때야 한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관 속에 들어가 주인과 함께 흙 속에 묻히고 말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그 밖에 노리개와 패물이 모두 만져보매 눈물겹고, 들여다 보매 생시의 모습이 훤히 떠올라 차마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두 싸서 그녀의 관에 함께 묻었다. 아끼어 입지 않고 장롱 깊이 넣어둔 옷이 죽음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부질없이 관의 빈 곳을 채워 주인과 함께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죽은 아내의 옷과 아끼던 물건들을 모두 함께 관 속에 넣은 뜻은 그녀와의 다정했던 기억마저 아내와 함께 떠나 보내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날 다정했던 사랑의 기억이야 어디 땅에 묻는다고 잊혀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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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소만처상 / 김정희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配所輓妻喪 배소만처상
聊將月老訴冥府 요장월로소명부
來世夫妻易地爲 내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천리외
使君知有此心悲 사군지유차심비
김정희의 「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이다. 이 시는 추사가 만년 제주도에 유배 갔을 당시 지은 시이다. 절해고도 제주도에서 실의의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늙고 병든 노정객에게 아내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오랜 세월 부부의 인연으로 지냈던 나날들. 자신의 귀양 소식에 아내는 얼마나 낙담하고 절망했던가. 끝내 그 절망을 지우지 못하고 아내는 그렇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돌아보면 예술도 명예도 덧없는 것이었다. 정작 평생을 함께 보낸 아내의 죽음에 가서 곡 한 번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는 기가 막히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첫 구에서 월하노인에게 부탁해서 이 기막힌 심정을 저승에 하소연 하겠노라 했다. 월하노인은 중매의 신이다. 전생에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을 맺어주어 현생에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나버린 지금엔 백년해로의 언약을 저버린 그녀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월하노인에게 내세에는 삶과 죽음을 바꾸어 지금의 이 기가 막힌 심정을 그대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죽은 이는 그렇듯 훌쩍 떠나면 그뿐이겠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하염없는 슬픔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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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맨 처음을 연암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연암으로 끝맺겠다.
본문으로 돌아가라 함이 어찌 문장만이리요? 일체의 모든 일이 모두 그렇지요. 화담花潭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는가?”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이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
「답창애答蒼崖2」이다. 이십 년 만에 눈이 열린 장님에게 다시 눈을 감으라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기적 같이 열린 광명한 세상을 거부하란 말인가? 연암이 던지는 이 새로운 화두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내가 주인이 될 수 없을진대, 내 집을 찾아가지 못할진대 열린 눈을 망상이 될 뿐이다. 소화하지 못하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우리야말로 ‘눈 뜬 장님’ 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서구의 빛깔과 형상에 망상을 일으켜, 어느 골목이 바른 골목인지, 어느 대문이 제 집인지도 모르고 길가에서 망연자실 울고 있는 눈 뜬 장님이 아니었던가. 아니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눈뜬장님은 아니었던가.
연암은 간명하게 일러준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네 집을 찾으리라. 나는 그의 이 말을 외래의 것을 버려 자신의 소아 속에 안주하라는 말로 듣지 않는다. 주체의 자각이 없는 현상의 투시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내가 본래 있던 자리, 미분화된 원형질의 상태로 돌아가라. 눈에 현혹되지 말라. 네 튼튼한 발을, 네 듬직한 지팡이를 믿어라. 갑자기 눈이 열리기 전 내 앞에 놓여 있던 세계, 익숙해져 있던 세계, 나와 사물 사이에 아무런 간극도 없던 세계로 돌아가라. 그 세계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귀울여 본래의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차차 새롭게 열리는 빛의 세계를 바라볼 뿐이다. 문학은 발전해왔는가. 아니다. 다만 변화해 왔을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라. 먼저 네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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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지은이 정민. 펴낸 곳, 솔출판사.
1판 1쇄 1996년 8월 5일, 1판 15쇄 2003년 3월 25일 발행본.
지은이 정민.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 분야를 탐사하여 한문학 문헌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우리 사회에 전해온 인문학자이자 고전학자.
저서로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살핀 《비슷한 것은 가짜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과 문헌을 파고든 《호저집》 《고전, 발견의 기쁨》 《열여덟 살 이덕무》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미쳐야 미친다》,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우리 한시 삼백수》 《한시 미학 산책》 등이 있다. 청언소품집인 《점검》 《습정》 《석복》 《조심》 《일침》,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총정리한 《한국의 다서》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산문집 《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어린이를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지었다.
*
책 속의 제법 많은 글과 시詩들을 옮겨 놓았다.
많이 옮긴 글만큼이나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책 속에 담긴 글들과 시詩들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주옥珠玉과 같다.
여러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은 욕심이 커서 더 많은 귀한 한시漢詩와 글들을 옮기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한시미학산책」은 제법 연식이 있는 책이지만 최근까지도 개정판으로 출판되고 있는 명저이다.
지은이 정민 교수는 이 책 ‘지은이의 말’에서 “한시는 표현 매체가 갖는 전달의 특수성 때문에 오늘날 그 효용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한시는 전문 연구자들의 학술적 관심사가 되고 있을 뿐,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버린 낡은 길이 되었다. 그렇다고 한시가 추구한 정신의 깊이나 미학의 너비마저 덤불 속에 버려둘 수는 없다. 먼지 쌓인 역사의 뒤켠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을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어, 막힌 길을 뚫고 그 현재적 의미를 밝히는 일은 순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임무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실천하는, 하우가 상당히 좋아하는 믿음이 가는 대단히 훌륭한 인문학자이다.
나는 그가 번역하고 지은 귀한 책들이 지금의 젊은 청춘들에게도 많이 읽혀지기를 바라고 소망하는 1인이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어 정민 교수께 고마운 말씀을 전하며 늘, 그의 건투를 빈다.
